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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 도서 줄거리, 중요한 것은 바로 지금, 관계 중시

by 큰달이 2024. 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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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포스팅에서 다뤄볼 소설은 밀란 쿤데라의 '정체성'입니다.

정체성

소개 및 등장인물

정체성은 1998년에 발표된 밀란 쿤데라의 중편 소설입니다. 비교적 짧은 분량의 소설이고, 다른 작품들에 비해서 잘 읽히는 편이기 때문에 밀란 쿤데라 입문으로 좋은 소설입니다. 이 소설은 샹탈과 장마르크라는 두 연인을 통해서 인간의 정체성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드는데요. 밀란 쿤데라는 남녀 관계를 통해서 철학적인 메시지를 참 잘 던지는 작가라는 느낌을 다시 한번 받았습니다. 주인공인 샹탈의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마치 '장주지몽' 같은 이야기가 매력적인 소설입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을 소개하겠습니다. 이 소설의 등장인물은 상당히 간단합니다. 샹탈과 장마르크라는 두 연인의 이야기이기 때문이죠. 이 두 사람이 이 작품의 주요 등장인물들입니다.

정체성 줄거리

이 작품의 주요 줄거리를 소개하겠습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샹탈과 장마르크는 노르망디 해변의 한 도시에 여행 중입니다. 샹탈은 하루 먼저 도착했고, 장마르크는 친구 F의 문병 후 다음 날 합류할 예정입니다. 샹탈은 장마르크보다 몇 살이 연상인데, 그녀는 과거에 결혼을 했었으나 갓난아기였던 아들이 숨을 거둔 후 전 남편과 이혼하고 장마르크와 동거 중이었습니다. 샹탈은 호텔에서 잠을 청하지만 흔히 그랬듯이 어수선하고 에로틱한 긴 꿈을 꾸고는 잠에서 깹니다. 그리고 피곤한 상태로 해변에 산책을 나갑니다. 한편 문병을 간 장마르크는 고등학교 때 친했던 친구인 F가 중한 병에 걸려 고통받는 모습을 보고도 별 감흥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는 F가 한 모임에서 자신을 비방하는 이야기를 듣고도 변호 한마디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화가 난 상태였습니다. 뒤늦게 샹탈이 있는 호텔에 도착한 장마르크는 그녀가 해변에 산책을 갔다는 사실을 알고 그녀를 찾아 나서지만, 다른 여자를 샹탈로 착각한 후 호텔로 돌아옵니다. 샹탈은 해변을 떠나 카페에 들렀다가 호텔방으로 돌아왔고, 두 사람은 방에서 만납니다. 샹탈은 장마르크에게 남자들이 더 이상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며 푸념합니다. 장마르크는 그녀를 찾아 헤맨 자신 앞에서 다른 남자들의 무관심을 이야기하는 샹탈에게 서운함을 느낍니다. 샹탈은 17세 때, 자신의 향으로 세상을 누비며 남자들을 정복하는 장미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나이가 들어 남자들의 관심 대상에서 멀어진 것이 불편했던 겁니다. 여행을 마치고 파리로 돌아와 일상을 살던 어느 날, 샹탈은 우편함에 한 남자로부터 자신에게 온 편지가 있음을 발견합니다. 미지의 그 남자는 자신이 예전부터 그녀를 지켜봤다는 말을 편지에 썼고, 샹탈은 다소 불쾌해하면서도 편지를 간직합니다. 그 이후에도 미지의 남자로부터 편지는 계속됩니다. 편지의 내용은 점점 노골적으로 되어 가는데, 샹탈은 편지를 장마르크 몰래 계속 간직합니다. 한편, 장마르크는 투병 생활을 하던 고등학교 친구 F가 결국 숨을 거뒀다는 소식을 듣고 과거 그와의 추억을 되새깁니다. 그러면서 그는 사람이란 과거의 자신을 기억하기 위해 친구와 우정을 필요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샹탈은 계속 편지를 보내는 미지의 남자가 누구인지 신경 쓰며 갖가지 추측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녀는 그 미지의 남자에게 왠지 모를 성적 매력을 느끼며, 편지에 쓰인 대로 빨간 목걸이를 하는 등의 행동을 합니다. 샹탈은 레스토랑의 젊은 남자가 그 미지의 남자가 아닐까, 아니면 나무 밑에 거지가 그 남자가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하지만 확실치 않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샹탈은 장마르크가 자신이 몰래 숨겨놓은 편지를 봤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직감적으로 그동안 편지를 보낸 그 미지의 남자가 장마르크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녀는 미지의 편지와 장마르크의 편지를 가지고 필적을 대조하러 흥신소에 가지만, 괜한 굴욕감만 안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사실 장마르크는 남자들이 자신에게 무관심하다는 샹탈의 푸념을 달래줄 작정으로 이런 장난을 한 것인데, 그녀가 점점 그 편지에 심취하자 질투와 소외감을 느끼게 된 것입니다. 그는 이제 이 장난을 그만둘 생각으로 샹탈이 흥신소에 간 사이 마지막 편지를 편지함에 넣고 돌아서는데, 뜻밖에 샹탈의 옛 시누이가 아이들을 데리고 방문합니다. 장마르크가 시누이를 대신 맞이하고 있는 사이 샹탈이 귀가하고, 그녀는 자기 방을 함부로 뒤지다 미지의 남자의 편지를 끄집어낸 아이들을 목격하고 화를 냅니다. 시누이와 아이들은 쫓겨나듯이 떠나고, 샹탈과 장마르크는 편지 일로 크게 다툽니다. 샹탈은 런던에 간다며 집을 뛰쳐나오고, 장마르크는 고민 끝에 샹탈을 뒤쫓아 런던으로 향합니다. 샹탈은 기차역에서 런던으로 출장 가는 직장 동료들을 만납니다. 장마르크도 기차 안에서 샹탈을 목격하는데, 그녀는 런던에 도착하자마자 자취를 감추고 장마르크는 그녀를 찾아 헤맵니다. 샹탈은 한 파티장에 가게 되지만 그 난잡한 파티에서 혐오감을 느낍니다. 그곳에서 나가려 하는데 나갈 수 없는 상황이 됩니다. 그녀는 비명을 지르면서 깨어나는데, 알고 보니 샹탈은 긴 꿈을 꾼 것이었습니다. 장마르크가 놀란 그녀를 안아주는데 도대체 어디서부터가 꿈이었는지 모호합니다. 샹탈은 자기 곁에 있는 장마르크에게서 절대 눈을 떼지 않겠다고 다짐합니다.

중요한 것은 바로 지금

이제 이 작품에 대한 감상평을 공유하겠습니다. 먼저 중요한 것은 바로 지금 이 순간이라는 겁니다. 이 짧은 소설 속에서 연인인 샹탈과 장마르크 사이에서는 꽤나 많은 일들이 벌어지는데, 그 결말이 상당히 특이합니다. 그 많은 일들은 사실 샹탈의 꿈이었고, 그 꿈이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조차 모른다는 겁니다. 그녀의 꿈은 런던으로 향하는 순간부터 시작되었을 수도, 장마르크가 익명의 편지를 보내기 시작했을 때일 수도, 어쩌면 이 소설 전체가 그녀의 꿈일 수도 있습니다. 마치 장자가 말한 '장주지몽'이 생각나는 상황을 연출한 작가 밀란 쿤데라의 의도는 무엇일까요? 사실 샹탈은 소설 내내 잘 때마다 특이한 꿈에 시달려 제대로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하는 모습을 보줍니다. 그녀는 꿈 자체를 싫어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과거를 중시하는 장마르크와 달리 샹탈은 현재의 가중치를 두고 현재에 충실하게 살아가고자 하는데요. 이런 그녀의 모습은 이혼하기 전 아주 어린 아들을 잃고 땅에 묻으며, 과거의 자신으로부터 해방감을 맛보는 장면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결국 작가가 샹탈을 통해 말하고 싶은 점은 중요한 것은 과거가 아니라 지금 당신이 살아가고 있는 이 시점, 현재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서 긴 꿈에서 놀라면서 깨어난 샹탈은 곁에 누워 자신을 달래는 장마르크에게서 절대 떠나지 않겠다고 다짐합니다. 긴 꿈을 통해 도리어 현재 자신의 곁에 있는 장마르크의 소중함을 깨달은 겁니다. 샹탈과 장마르크 두 사람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과거가 아니라 바로 지금 이 순간, 현재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 아닐까요? 그리고 작가는 독자들에게 현재에 주목하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름과 정체성

다음으로 이름이 정체성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실 이름이 정체성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히 크다고 할 수 있는데, '정체성'이라는 제목을 가진 이 소설에서 이런 장면은 두 번 나옵니다. 먼저 장마르크가 자신의 이름을 숨긴 채 익명으로 샹탈에게 편지를 보내는 장면인데, 그는 익명을 사용하자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나타납니다. 심지어 장마르크는 익명의 자신에 대해 샹탈이 설레어하는 모습을 보자, 자기 자신이면서도 그 익명의 존재에 질투심을 느끼기도 합니다. 비록 동일 인물이더라도 다른 이름을 사용하자 다른 정체성을 가지게 된다는 것을 상당히 극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인 것 같습니다. 다른 하나의 장면은 런던의 파티장에서 샹탈이 만난 노인이 샹탈의 이름을 '안'라고 부르자 그녀가 보였던 내면의 반응입니다. 사람뿐 아니라 어떤 대상을 그 고유의 이름으로 부르는 것은, 그 대상의 정체성을 인식하고 인정한다는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샹탈은 자신을 샹탈이 아닌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것에 상당히 불쾌한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것이죠. 이처럼 이름은 어떤 사람의 정체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수단이고, 반대로 그 정체성을 가장 잘 숨길 수 있는 도구가 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이 작품에서 드러나는 이름에 대한 에피소드들은 이름과 정체성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인간은 왜 관계를 중시하는가

마지막으로 인간은 왜 다른 사람을 찾고 그들과의 관계를 중시하는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샹탈은 어린 아들이 숨을 거두고 전 남편과 이혼하면서 자유를 얻게 됩니다. 자유로워진 그녀는 또다시 장마르크라는 4살 연하의 남자와 사귀게 됩니다. 작가의 또 다른 작품인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주체적인 성격을 가진 등장인물들도 이상하게 혼자 지내려고 하지 않습니다. 토마시와 사비나 같이 자기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인물들조차도 곁에 애인을 두고 있으며, 이 소설의 샹탈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의 모습을 통해서 인간은 누구나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맺으려 하고, 그것에 큰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그 이유는 이 소설의 제목인 정체성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우리는 자신의 정체성을 타인과의 관계에서 찾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장마르크는 예전에 친했지만 지금은 멀어진 친구 F를 떠올리면서 우정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는 우정에 대해 이야기하며, 인간은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서 역설적으로 타인과의 관계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옛 시누이가 자신을 찾아왔을 때 샹탈이 그토록 놀라고 불쾌했던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시누이를 통해서 그녀는 지우고 싶은 자신의 과거의 정체성을 되살렸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요. 어쩌면 우리가 특정한 사람을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이유는 그들을 통해서 발견하고 떠올리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감정이 투영되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여기까지 '정체성' 줄거리와 감상평이었습니다. 대중성과 달리 쉽게 읽히지 않는 밀란 쿤데라의 작품 중에서는 짧고 임팩트 있는 편입니다. 작가의 소설에 처음 도전하는 분들께 추천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