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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이.' 도서 감상평, 도전, V.가 상징하는 것, 비극의 원인

by 큰달이 2024. 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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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감상평을 남겨 볼 책은 토머스 핀천의 '브이.'입니다. 1963년에 발표된 토머스 핀천의 '브이.'는 작가의 첫 번째 장편 소설로 알려져 있습니다. 20세기 초중반을 시대적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브이라는 존재를 찾아가는 내용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설명드리긴 하지만 사실 이 작품은 내용과 줄거리를 파악하기 정말 어렵습니다. 그저 검은 것은 글자, 하얀 것은 종이라는 식으로 눈으로 글을 따라가며 읽는 것에 의의를 둘 수밖에 없죠. 포스트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작가인 토머스 핀천이기 때문에 사실 많은 분들에게 권하기 쉽지 않은 소설이긴 합니다. 그래서 이번 포스팅은 감상평을 위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브이.

브이. 줄거리

이 작품의 주요 줄거리를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소설은 베니 프로페인이라는 인물이 여기저기를 떠돌며 좌충우돌하는 이야기와 스텐슬이라는 인물이 V.라는 존재를 찾는 이야기로 구성됩니다. 하지만 줄거리 요약이 의미가 없을 만큼 특별한 서사 구조가 없이 뒤죽박죽으로 전개되고 있어 주요 줄거리 정리는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읽는다는 행위에 대한 도전

이제 작품의 감상평을 공유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이 소설은 읽는다는 행위의 의미에 도전하고 있다는 겁니다. 이미 널리 알려진 대로 토머스 핀천이라는 작가는 포스트 모더니즘 사조를 대표하는 작가 중 하나입니다. 문학에서 포스트 모더니즘 사조는 일관된 서사적 구조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고에서 완전히 벗어난 새롭고 생소한 기법들을 보여줍니다. 이 소설을 읽다 보면 마치 파블로 피카소가 대상의 구조를 완전히 해체시켜 그림으로 옮겨놓은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됩니다. 피카소의 그림 같은 경우에 개별적으로 뜯어보면 무엇을 그린 것인지 파악하기 어렵지만, 전체적으로는 대략 어떤 주제인지는 알 수 있습니다. 이 소설도 전반적으로는 V.라는 존재를 추적해 나가는 내용이라는 건 알겠지만, 반대로 세부적인 이야기를 파악하기란 너무나 어렵습니다. 따라서 독자 입장에서는 소설을 읽으면서 어질어질한 느낌이 들고, 도대체 작가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명확하지 않아 혼란스럽습니다. 거기다가 작가의 또 다른 대표작 '제49호 품목의 경매'와는 달리 분량 자체도 적지 않아 읽는 행위 자체가 괴롭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하지만 제가 생각하기에 토머스 핀천이 자신의 소설을 이렇게 구성한 것은 다분히 의도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전통적인 소설의 구조와 기법을 완전히 해체해 새롭게 구성한 그 행위 자체가 또 다른 문학 사조임을 보여주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작가의 의도대로 이 소설을 통해서 사건이나 생각, 심지어 읽는 행위 그 자체에서도 의미를 찾기 어려운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게 됩니다.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것은 어쩌면 문학 작품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각자가 내면에서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소설은 분명히 파격적이며 지금 시대에 읽기에도 전위적으로 느껴지는 소설인 것 같습니다.

'V.'가 상징하는 것

다음으로, V.가 상징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냥 읽기에도 어질어질한 이 소설 속에서 그나마 파악이 가능한 내용은 스탠슬이라는 인물이 V.라는 존재를 추적하고 있다는 겁니다. 작가는 도대체 이 V.라는 존재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제시하지 않고 있으며, 사람인지 사물인지 아니면 지명인지 무엇인지조차 알 수 없습니다. 오히려 V.의 모호성만 드러나는 문장 때문에 혼란스럽기만 한데, 이것을 추적하고 있는 스텐슬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V.가 상징하는 것이 조금 분명해집니다. 스텐슬의 입장에서 봤을 때 V.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찾아내야만 하는 그 무엇입니다. "만약 우리가 이미 추측하지 못했다면 그 여자란 다름 아닌 레이디 V, 즉 스텐슬의 광적 추구의 대상임을 여기서 밝혀야겠다." 이를 확대해서 해석하자면, V.란 인간이 추구하는 것을 상징하는 존재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V.가 가지고 있는 두 가지 특성인 모호성과 인간이 추구하는 대상을 상징하는 상징성을 결합해 보면 작가가 보내는 메시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 시대에 이르러 인간이 추구하는 대상은 모호해졌고 불확실해졌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라는 겁니다. 지금 이 시대에 이르러 확실한 것은 모든 것이 불확실하다는 것이고, 분명한 것은 모든 것이 모호하다는 것을 문학적으로 표현해 낸 것이 V.라는 것이죠.

비극의 원인

마지막으로, 세상에 흔히 나타나는 비극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 소설은 앞서 말한 대로 서사 구조를 정리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뒤죽박죽 진행되고 있는데, 그나마 확실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다는 것입니다. 소설 속 등장 인물들은 당시에 벌어진 끔찍한 사건들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각자의 생각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바로 이런 대화나 생각들을 통해서 작가 토머스 핀천이 인류의 비극이 어디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작가는 비극의 원인은 사람들의 무지에서 비롯된다고 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만약 그것이 사람들에게 너무도 갑작스러운 것으로 느껴졌다면 그건 그들 자신이 너무도 깜깜했다는 걸 탓할 수밖에 없는 일이지요. 즉, 그들의 무지가 대비극의 원인이란 말이죠."라는 문장에서 말하는 '무지'란, 문자 그대로 알지 못함을 의미한다기보다는 불편한 진실에 대한 외면을 의미한다고 보는 것이 적절할 것 같습니다. 흔히 사람들은 극단적인 상황이 마치 천재지변이라도 벌어지듯 예기치 못한 재난인 것처럼 여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인간 사회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비극들은 작은 원인들과 별것 아닌 것처럼 보였던 요소들이 차곡차곡 누적된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리고 대개 사람들은 그것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알면서도 당장 자신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에 또는 자기 일이 아니라서 외면해 오다가 대비극을 초래하게 됩니다. 두 번째 세계대전은 나치 독일에게 당하던 피해자가 유대인이기 때문에, 동유럽의 작은 나라들이기 때문에 외면하다가 큰 비극으로 번진 것이 그 예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 토머스 핀천은 인류가 겪은 대부분의 대비극의 원인은 그들 스스로의 '의도적인 무지'에 있다고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우리 시대에 벌어지고 있는 숱한 비극적 사건들에 대해서 우리 스스로가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지 성찰해 보게 됩니다.

 

읽는 것도 어려웠지만, 읽고 나서 정리하는 데도 큰 어려움을 느낀 소설입니다. 여기까지 토머스 핀천의 브이.에 대한 리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