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다뤄볼 책은 밀란 쿤데라의 무의미의 축제입니다. 무의미의 축제는 2000년에 발표된 향수 이후 무려 14년이 지난 후인 2014년에 발표된 작품입니다. 밀란 쿤데라의 가장 최근작이라고 할 수 있죠. 작가도 사람이기 때문에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작품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밀란 쿤데라는 워낙에 오랜 기간 동안 작품 활동을 했기 때문에 이런 점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작가 중 한 사람입니다. 개인적으로 밀란 쿤데라의 작품들 중에서 난해함으로는 첫손가락에 꼽을 수 있을 정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이 다루고 있는 묵직한 주제 의식은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가 주목할 만한 것이기도 하죠. 작가가 어떤 점을 지적하고 싶어 했는지 같이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무의미의 축제 줄거리
이 소설은 알랭, 샤를, 칼리방, 라몽이라는 네 친구를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그리고 라몽의 직장 동료인 다르델로라는 남자도 등장하죠. 6월의 어느 날 알랭은 파리의 거리를 지나면서 당시에 유행인 배꼽을 드러내는 패션을 하고 지나가는 여자들을 보게 됩니다. 그는 배꼽에 여성의 매력이 집중되어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을을 어떻게 정의하는 것이 좋을지 고민에 빠집니다. 그때 라몽은 뤽상부르 공원을 지나고 있었는데 샤갈 전시회를 보고 싶었지만, 사람이 너무 많은 것을 확인하고 발걸음을 돌려 공원을 산책하기 시작합니다. 한편 라몽의 직장 동료인 다르델로는 병원에 갔다가 우려와 달리 다행히 암이 아니라는 진단을 받고 가벼운 마음으로 뤽상부르 공원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다르델로는 공원에서 라몬과 마주치게 되는데, 그는 자신의 생일에 칵테일파티를 열려고 한다면서 이를 준비할 수 있는 사람을 추천해 달라고 합니다. 그러고 나서 다르델로는 라몽에게 충동적으로 자신이 암 진단을 받았다며 아무런 목적이나 이득이 없는 거짓말을 합니다. 다르델로를 위로하고 그와 헤어진 라몽은 친구 샤를의 집으로 갑니다. 라몽은 샤를의 집에서 샤를과 또 다른 친구 칼리방을 위해 칵테일파티 일거리를 잡아왔다고 하면서 다르델로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샤를은 구 소련의 정치인이었던 흐루쇼프의 회고록을 읽고 있었는데, 거기에는 24마리의 자고새에 대한 스탈린의 일화가 수록되어 있었습니다. 스탈린이 나무에 앉아 있는 24마리의 자고새를 발견하고 12마리를 먼저 잡은 후에 다시 탄약을 챙겨 와 그때까지도 남아있던 12마리를 잡았다고 각료들에게 이야기했다는 일화였죠. 샤를은 친구들에게 이 이야기를 하면서 스탈린이 한 이 농담을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다는 것이 새 시대의 상징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칼리닌그라드라는 도시의 이름을 따게 만든 칼리닌이라는 구소련의 정치인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죠. 사실상 대단치 않은 인물인 칼리닌의 이름을 따서 주요 도시에 이름을 지은 스탈린이 사실 그를 엄청나게 아꼈다는 것이었습니다. 한편 알랭은 집으로 돌아오면서 계속 배꼽에 대해서 생각을 이어가고, 10살 무렵 자신을 버리고 떠난 어머니에 대해 생각합니다. 그러다 한 여자와 부딪힐 뻔하고 기계적으로 사과를 하게 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알랭은 자신의 존재가 사과쟁이로 태어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는 친구인 샤를과 통화하며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샤를은 자기 어머니가 위독하다며 서로 어머니에 대한 대화를 이어갑니다. 샤를과 칼리방은 라몽이 소개해 준 다르델로의 칵테일파티를 준비하고 파티에는 많은 사람들이 참석합니다. 라몽도 내키지 않았지만 그 파티에 참석했는데, 거기서 카클리크라는 이름의 바람둥이 지인을 만나는가 하면 줄리라는 이름의 아름다운 여자도 알게 됩니다. 떠들썩한 파티는 마무리되고 라몽은 조용히 파티장을 빠져나가고, 샤를과 칼리방은 파티장을 정리한 후에 친구 알랭의 집으로 향합니다. 거기서 칼리방은 알랭의 집 찬장 높은 곳에 있는 술병을 꺼내려다가 떨어뜨려 깨뜨리는데, 그 술은 얼마 전에 알랭이 자신과 같은 해에 생산된 것인 줄 알고 사둔 것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칼리방은 다리를 다치고, 그 사이 샤를은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 급히 고향으로 떠납니다. 다음날 오전에 알랭은 라몽, 칼리방과 미술관에서 만나기로 했기 때문에 오토바이를 타고 가면서 자신이 태어나길 바라지 않았던 어머니를 떠올립니다. 약속 장소에 다친 칼리방은 나오지 않았고, 알렌과 라몽은 여전히 사람이 북적이는 미술관에 가는 대신 뤽상부르 공원을 산책하며 대화를 나눕니다. 그러다가 두 사람은 다르델로와 마주치는데, 그들은 한 남자가 총을 가져와 뤽상부르 공원에서 조각상들을 향해 사격을 하는 것을 지켜보게 됩니다. 사람들은 그의 익살스러운 말과 행동에 즐거워하고, 남자는 어린이 합창단이 '라 마르세예즈'를 부르는 가운데 마차를 타고 사라집니다.
시대가 만든 무의미함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서 시대가 무의미함을 만든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무의미의 축제라는 제목답게 이 소설 속에는 여러 가지의 무의미한 이야기들이 나열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처음에 등장하는 다르델로는 우연히 공원에서 만난 직장 동료 라몽에게 자신이 병에 걸렸다고 거짓말을 하는데, 자기 스스로도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 장면인 한 남자가 나타나 조각상들에게 총을 난사하는 것도 아무런 의미가 있지 않습니다. 대표적으로 처음과 끝 장면을 언급했지만, 사실 이 소설은 정말로 무의미의 축제인 것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이 의미를 찾지 못하며 사는 듯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작가 밀란 쿤데라가 이들의 무의미한 모습을 보여주고 제목조차 무의미의 축제라고 지은 이유가 무엇일지 궁금해집니다. 이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서는 작가가 소설 속에 의도적으로 끼워놓은 스탈린 이야기에 대해서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등장인물들은 소련의 독재자 스탈린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 그가 흐루쇼프 등에게 의미 없는 농담을 하고 큰 역할을 하지 않은 칼리닌의 이름을 따 도시의 이름을 지었던 일화들이죠. 작가가 스탈린 시대의 일화들을 굳이 삽입한 이유는 사람들에게 무의미가 결국은 시대의 영향 때문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싶었습니다. 스탈린 시대에는 모든 것이 제한될 수밖에 없었고, 의미를 찾고자 하는 모든 행위들은 수포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처럼 시대가 가지고 있는 특징에 따라 사람들은 일부러 자신의 삶을 가볍게 대하려는 모습. 즉, 일부러 무의미하게 받아들이려는 경향을 갖는다는 것이죠. 그러고 보면 지금 시대에 사람들이 세상을 진지하게 대하지 않으려고 하고 가볍게 대하려는 이유, 무의미하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 역시 같은 것이 아닐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배꼽의 의미
이 소설은 다양한 이야기가 뒤죽박죽 섞여서 전개되는데, 그중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알랭의 배꼽 이야기입니다. 소설의 첫머리에 등장하는 알랭은 당시 여성들 사이에 배꼽을 드러내는 패션이 유행하는 것을 보면서 독특한 생각에 잠깁니다. 지금까지는 남성들이 여성의 다른 신체 부위에 매력을 느꼈다면, 앞으로는 배꼽에 매력을 느끼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는 것이었죠. 그러면서 알랭은 배꼽에 주목하게 되는 것은 각 개인이 개성을 잃어가는 몰개성의 상징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요. 이 문장에서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배꼽은 단지 반복을 거부하지 않는 데서 그치지 않고, 반복을 불러. 이제 우리는, 우리의 천년 안에서 배꼽의 징후 아래 살아갈 거야.'라는 것입니다. 배꼽은 생물학적으로 어머니의 뱃속에서 영양분을 공급받던 태반의 흔적입니다. 따라서 모든 인간은 예외 없이 배꼽을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는데 현대인들이 이것에 주목하게 된다는 것에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는 것이죠. 알랭은 이를 반복을 상징한다고 말하는데, 배꼽은 인간이 탄생부터 삶과 죽음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동일하게 반복하고 있다는 상징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이 비슷한 모양의 배꼽을 가지고 대동소이하게 살아간다는 생각은 인간의 보편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누구나 특별할 것이 없다는 반증이 되기도 합니다. 따라서 작가 밀란 쿤데라가 이 소설의 첫머리부터 계속해서 알렌과 배꼽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는 이유는 반복의 시대가 왔음을 말하고 싶었기 때문인 것 같았습니다. 그 반복의 시대란 이 소설의 제목이자 주제 의식인 무의미와 맥이 닿아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죠. 우리의 삶이 무수히 반복되는 것들 중에 하나일 뿐이라면 특별한 의미를 찾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무너질 아성 속에서
알랭에게는 나이 차이가 꽤 많이 나는 여자친구 마들렌이 있었는데, 알랭과 친구들은 스탈린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마들렌을 떠올립니다. 그녀가 스탈린이 죽고 나서 수십 년이 지나 태어났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워지면서 그들은 시대 흐름에 따라 스탈린에 대한 평가가 달라져 왔다는 것을 상기합니다. 한 인물인 스탈린에 대해서도 이처럼 시대마다 다른 평가가 내려지므로 각 개인은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음을 체감하는 겁니다. 그러면서 알렝과 친구들은 이렇게 말하는데, 각자가 가진 차이를 너무나 잘 표현한 문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살면서 서로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고, 토론을 하고, 다투고 그러지. 서로 다른 시간의 지점에 놓인 전망대에서 저 멀리 서로에게 말을 건네고 있다는 건 알지 못한 채 말이야'라는 것입니다. 같은 시점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저마다의 다른 지점에 자신만의 전망대를 짓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신만의 '아성'이라 할 만한 이것 때문에 사람들은 모든 주제에 대해서 같은 생각과 선호를 가질 수 없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작가 밀란 쿤데라가 지적하고 싶은 핵심은 바로 이어지는 대화에서 나오고 있는데, 샤를은 시간은 흘러간다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죽은 사람들은 죽은 지 오래된 자들이 돼서 아무도 그들을 기억하지 못하게 되고 완전히 무로 사라져버리는 거야'라고 하는데, 생각해 볼수록 너무나 허망한 느낌을 주는 말인 것 같습니다. 종합해 보면 우리 모두는 각자가 살아온 시대의 영향 아래 놓여서 제각기 견고한 아성을 쌓고 있지만, 그것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스러지고 만다는 겁니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서 정말 여러 가지 각도로 무의미함을 표현하고 있는데, 그 다채로움이 정말 놀라울 정도입니다. 이 책은 짧고 간단한 작품이지만 철학적 주제를 담고 있습니다. 곱씹어 생각해 볼수록 많은 의미가 담겨 있으니, 한 번 읽어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