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감상해 볼 작품은 버지니아 울프의 등대로입니다. 1927년에 발표된 등대로는 버지니아 울프의 대표작 중 하나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소설은 의식의 흐름 기법에 따라 집필되었으며, 특별한 줄거리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당황할 수 있습니다. 특별한 서사적 구조는 없지만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등대의 의미라든지 여성의 사회적 지위 같은 점들이죠. 또한 시간의 흐름을 나타내는 기법이 매우 예술적이고 감각적이라 감탄하게 됩니다.
등대로 줄거리
램지 가족은 영국 북부 스코틀랜드 바닷가에 위치한 별장에서 여러 지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중입니다. 램지 부부는 8명의 자녀를 두고 있었습니다. 그중 한 명인 제임스는 별장에서 보이는 외딴 섬의 등대에 가보고 싶어 하지만, 램지는 내일 날씨가 좋지 않을 거라고 이야기합니다. 철학자인 램지는 가족들에게도 자신의 의견을 쉽게 굽히지 않는 냉철한 사람이었고, 제임스를 포함한 가족들은 이에 대해 불만이 있었습니다. 램지 가족들과 함께 있는 사람들 중에는 무신론자라 불리는 찰스 텐슬리라는 남자가 있었습니다. 학문을 연구 중인 그 역시 차가운 사람이었고, 내일 기상 상황을 볼 때 등대에 가기 어려울 것이라고 하죠. 램지 아이들은 늘 자기 확신에 차서 상대의 기분을 배려하지 않는 텐슬리에 대해서 감정이 좋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램지부인은 당시 여성들에게 부여된 사회적 의무에 따라 텐슬리에게 친절하게 대해왔고, 그는 이런 대우를 만족스러워합니다. 램지 부인은 의기소침해 있는 제임스를 달래면서, 등대에 갈 수 없다고 타박하는 남편과 텐슬리에 대해 불쾌해합니다. 한편 램지 가족과 함께 지내고 있는 지인 중에는 릴리 브리스코라는 여자도 있었습니다. 그녀는 화가 지망생이며, 그곳에서도 그림을 그리며 지냅니다. 텐슬리는 여자가 무슨 그림이냐는 식으로 비아냥대고, 램지 부인은 30살이 넘도록 미혼인 릴리를 불쌍하게 생각해 윌리엄 뱅크스와 엮어주려고 합니다. 하지만 릴리는 결혼에 큰 관심이 없었고, 화가로서 자신의 삶을 사는 것에 더 관심을 갖습니다. 그러면서도 릴리는 램지부인의 아름다움과 정형적인 삶에 대한 일종의 존경심을 가지고 있었고, 정서적으로도 많이 의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겉보기에 차갑고 이성적인 램지도 사실은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가 심했고, 그만큼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도 강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괜히 릴리 곁에서 서성이며 관심과 칭찬을 받고 싶어 했죠. 그날 저녁 시간에 다들 모여 함께 만찬을 하게 되는데, 그 자리에서 램지부인은 다양한 개성을 가진 남자들을 하나하나 어르고 달래며 분위기를 이끕니다. 그녀는 그 자리에서 내일 등대에 갈 수 없을 거라며 초를 치는 텐슬리도 잘 받아주고, 릴리는 이런 램지부인의 모습에 감탄하죠. 사람들은 식사를 하며 정치와 문학 등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눕니다. 이후 잘 시간이 되어 모두 뿔뿔이 흩어집니다. 램지 부인은 남편과 함께 그날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면서, 내일 날씨 때문에 등대에 가지 못할 거라는 남편의 말에 수긍합니다. 이후 세월이 흐릅니다. 그 사이 램지 부인은 갑작스러운 건강 악화로 숨을 거두고, 램지 부부의 아들 하나는 전쟁에 나가 전사하고, 딸 하나는 결혼해 출산을 하다가 숨을 거둡니다. 10년 후, 살아남은 사람들은 다시 램지 가족의 별장에 모입니다. 이번엔 램지가 10대로 성장한 아이들을 독촉해 등대로 가려고 하죠. 여전히 미혼인 릴리는 램지 부인을 그리워합니다. 그녀는 그림 그리기에 열중하려 하지만, 마음이 뒤숭숭해 쉽사리 시작하지 못합니다. 램지와 그의 자녀들은 요트를 타고 10년 전에 끝내 가지 못했던 등대섬으로 향합니다. 아들 제임스는 독재자로 굴림하는 아버지에 대한 불만을 품습니다. 그러다가 아버지에게 배를 잘 몬다는 칭찬을 받자 제임스의 마음은 풀어져버리고 그들은 마침내 등대섬에 도착하죠. 한편, 별장에 남아 램지부인을 그리워하던 릴리는 그들이 등대섬에 도착한 사실을 직감하며 영감을 얻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램지 부인이 가진 장악력의 근원
이 소설의 전체적인 내용은 별장에 모인 램지 가족과 지인들이 각자의 생각과 감정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다양한 등장인물 중 이 소설을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인물은 바로 램지부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설의 1부인 '창문'에서 램지 부인은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개성 강한 사람들을 잘 다뤄냅니다. 그녀는 겉으로는 냉정하지만 속으로는 인정 욕구가 충만한 남편 램지, 자아도취가 심해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텐슬리도 포용합니다. 또한 8명이나 되는 개성 강한 아이들을 돌보고, 릴리 브리스코에게도 관심을 잊지 않죠. 램지 부인의 이런 모습은 마치 다양한 악기로 구성된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마에스트로 같은 느낌을 줍니다. 램지 부인이 사람들의 마음을 장악할 수 있는 이유는 릴리와의 관계에서 은연 중에 드러나고 있습니다. 언뜻 보면 램지 부인은 미혼인 릴리를 불쌍하게 여겨 윌리엄과 엮어주려는 오지랖을 부립니다. 그러나 램지 부인은 릴리의 성격을 정확하게 꿰뚫고 있었습니다. '릴리에게는 무엇인가 심지가, 열정적인 것이, 자기만의 무엇인가가 있었고, 부인은 그 점을 아주 좋아했지만, 그걸 알아보는 남자는 별로 없을 것이었다. 분명 없었다.'라는 문장을 통해 이를 보여줍니다. 오직 램지 부인만이 릴리 브리스코의 내면에 있는 강한 심지, 불타는 열정을 알아보고 있었던 겁니다. 게다가 그녀는 남편인 램지가 겉보기에는 자존심 강하지만, 사실 내면에는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가득한 사람임을 잘 알고 있었죠. 그렇기 때문에 1부의 마지막 장면에서 내일 날씨가 좋지 않아 등대에 갈 수 없다는 남편의 말에 동조해 주는 겁니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램지 부인이 남편의 생각에 동의해 주면서 승리감을 느낀다는 것인데요. 이를 통해서 램지 부인은 다른 사람들의 감정적 수요를 충족시키는 것에 능했으며, 이런 행동을 굽히는 것이라고 여기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램지부인의 장악력은 다른 사람의 내면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과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배려에서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등대가 상징하는 것
이 작품을 읽은 사람들은 등대가 상징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게 될 겁니다. 사실 이 소설은 등대로 시작해서 등대로 끝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제임스가 다음 날 등대에 가고 싶다고 하는 장면으로 시작해서 램지의 가족이 등대가 있는 섬에 도착하는 장면으로 끝나기 때문이죠. 제목조차 '등대로'이기 때문에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볼 수 있지만, 특이하게도 작품 속에서 차지하는 분량이 크지는 않습니다. 제임스가 등대에 가고 싶다고 했지만, 그 외의 사람들은 관심이 없거나 비관적입니다. 등대에 있는 아이들에게 준다며 양말을 짜고 있는 램지부인조차 등대로 향하고 싶은 열망이 크지는 않아 보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봤을 때 이 소설 속 등대를 모든 인간이 추구하는 어떤 이상향이라고 해석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이상향이라고 해석하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이 등대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곳에 가고 싶어 하는 열망을 표출해야 합니다. 심지어 10년 전에는 그토록 등대에 가고 싶어 하던 제임스조차도 10년 후에는 아버지가 자신을 등대에 억지로 데려가려 한다며 거부 반응마저 보이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소설 속에서 등대는 모든 사람이 아니라, 특정한 누군가에게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 물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누군가란 바로 릴리 브리스코입니다. 램지 가족이 등대로 향할 때, 릴리는 동행하지 않고 별장에 남아 그림을 그리려 합니다. 그러나 릴리는 램지부인과의 이별로 쉽사리 그림을 그리지 못합니다. 그러던 릴리는 램지 가족이 바다를 건너 마침내 등대에 도착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고 나서야 그림을 그려냅니다. 램지 부인에 대한 그리움으로 그림에 집중하지 못하던 릴라가 그림을 완성해 내는 것을 통해 등대가 가진 의미를 엿볼 수 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램지 부인을 그리워하며 그림에 집중하지 못하던 그녀가 그림을 완성해 낸 것을 통해 릴리에게 등대가 갖는 의미를 엿볼 수 있습니다. 바로 10년 넘게 그녀를 지배했던 램지 부인이라는 존재로부터 해방되어 자신의 자의식을 찾아낸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치인 겁니다. 릴리에게 있어 램지 부인의 가족은 그녀의 그림자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이 등대에 도착했다는 것은 릴리가 마침내 램지 부인의 그림자에서 벗어난 것을 의미하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릴리는 램지 가족이 등대에 도착한 것을 알고 나서야 램지 부인을 잊고 그림을 완성시킬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므로 이 소설에서 등대는 릴리에게 있어 램지부인으로부터 독립된 자의식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빛과 시간의 관계
이 작품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비교적 짧은 분량을 가진 2부의 제목은 '세월이 가다'입니다. 버지니아 울프는 2부를 통해서 1부 창문과 3부 등대 사이에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음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 기법이 상당히 재미있습니다. 빛을 활용하고 있기 때문인데요. 빛의 유무의 관점에서 이 소설의 구조를 분석하면 1부 빛, 2부 어둠, 3부 빛으로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1부의 내용은 램지의 별장에 모인 사람들이 보여주는 단 하루 저녁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데, 저녁이므로 햇빛은 없지만 인공적인 불빛이 있습니다. 2부는 그날 밤 불을 끄고 모두가 잠자리에 들면서 시작합니다. 이때문에 어둠이 배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2부의 끝은 10년 후 다시 램지의 별장에 온 릴리가 새벽에 일어나는 장면입니다. 이후 빛이 들어오며 자연스럽게 3부가 시작합니다. 불을 끄고 자고 일어나니 10년 후 아침이 된 것 같은 느낌을 줌으로써, 자연스럽게 세월의 흐름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죠. 마치 연극에서 막과 막 사이에 암전을 주듯이 이 소설에서 1부와 3부 사이에 암전을 주어 그 사이에 시간이 흘렀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여기서 생각해 볼 만한 점은 버지니아 울프가 세월의 흐름을 어둠을 통해 표현한 이유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빛이 있을 때와 어둠이 있을 때 시간에 대한 인간의 인식이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일반적으로 햇빛이 있는 낮이나 불빛이 있는 이른 밤에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천천히 흐르고, 어두운 상태에서 잠들면 시간이 빨리 지난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다시 말하면 빛이 있을 때 우리는 시간을 의식하고 있으며, 빛이 없을 때 우리는 시간을 의식하지 않는 상태가 된다는 겁니다. 우리는 의식하고 있으면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것처럼 느끼고, 인식하지 않고 있으면 빨리 지나는 것처럼 느낀다는 것을 알고 있죠. 한마디로 작가는 빛을 의식의 각성 상태로, 어둠을 그 반대의 상태로 설정함으로써 10년이라는 시간의 흐름을 문학적으로 멋지게 표현해 낸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까지 등대로 도서 줄거리와 감상평이었습니다.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은 처음 접하는 것인데, 짧지만 강렬한 작품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