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글에서 감상평을 남겨 볼 소설은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대위의 딸'입니다.
작가 및 작품 소개
알렉산드르 푸시킨은 1799년 러시아의 모스크바에서 태어납니다. 그는 러시아의 명문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귀족인데요. 친지들 중에 시인이 많아 그들의 영향을 받으며 자랐다고 합니다. 10살 때 이미 프랑스어로 시를 쓸 정도의 신동이었습니다. 그는 귀족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젊은 시절 진보적인 사상으로 무장하게 됩니다. 이러한 그의 정치적 사상이 시로 표현되어 유배 생활도 하고, 검열 대상이 되는 등 작가로서는 결코 녹록지 않은 삶을 살았습니다. 푸시킨은 자신의 작품에 당시 농노제 아래의 러시아의 실상을 반영하는 것을 지향했다고 합니다. 안타깝게도 푸시킨은 39세 젊은 나이로 세상을 마감했지만, 러시아 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대위의 딸은 1836년에 쓰인 푸시킨 말년의 대표작입니다. 1773년 푸가초프의 난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푸시킨은 이 사건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졌다고 합니다. 그는 푸가초프의 난이 일어난 현장을 직접 방문해서 자료를 수집하고, 극비 문서까지 열람하면서 '푸가초프 반란사'를 쓰기도 했었는데요. 푸가초프의 난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일반적인 지배층의 시선과는 다른 것이었습니다. 이 작품에는 귀족, 군인, 농민 등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하고 그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 때문인지 대위의 딸은 19세기 러시아 사실주의 문학의 선구적인 작품이라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대위의 딸 줄거리
이제 대위의 딸의 주요 줄거리를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주인공인 표트르 안드레이치는 아직 스물도 되지 않은 젊은 귀족 남자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이 강하게 크기를 바라는 마음에, 아들이 군대에 갈 수 있는 나이가 되자 군인의 길을 걷게 합니다. 표트르는 모스크바나 상트페테르부르크와 같은 대도시의 부대에 가길 원했지만, 정작 그가 배치받은 곳은 동쪽 변방의 한 군사기지였습니다. 표트르는 나이 든 하인 사벨리치와 부임지로 향하는데, 그 길은 너무나도 힘든 고행길이었습니다. 그들은 가는 길에 한 부랑자를 만나게 되는데요. 표트르는 그에게 자신의 토끼 가죽 외투를 줍니다. 이 행동은 훗날 그의 운명을 뒤바꾸게 됩니다. 표트르는 오렌부르그라는 도시 근처의 벨로고르스크 요소에 도착하여 군사기지 사령관인 미로노프 대위와 그 가족들을 만나게 됩니다. 표트르는 미로노프 대위의 딸인 마리야와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그 요새에 있던 쉬바브린 또한 마리아를 짝사랑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마리야는 경박한 남자인 쉬바브린을 거절하고, 표트르의 구애를 받아들여 약혼합니다. 약혼한 두 사람은 행복의 정점을 향하던 중 큰 시련을 맞게 됩니다. 바로 푸가초프라는 자가 반란을 일으킨 것인데요. 푸가초프의 반란군은 파죽지세로 주변 요새들을 함락시키고, 마침내 주인공이 있는 요새까지 몰려옵니다. 결국 기세가 잔뜩 오른 반란군들에게 요새는 함락되고 미로노프 대위 부부는 끝을 맞이하게 됩니다. 마리아는 신분을 감춘 채 그들에게 붙잡히고, 표트르 역시 반란군들에게 사로잡히고 맙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푸가초프의 정체는 표트르가 토끼 가죽 외투를 주었던 부랑자였습니다. 호방한 성격의 푸가초프는 표트르의 은혜를 잊지 않고 표트르와 하인인 사벨리치를 풀어줍니다. 하지만 표트르는 약혼녀인 마리아를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다시 푸가초프를 찾아가 담판을 짓고 마리야를 구출해 나오는 데 성공합니다. 푸가초프는 과거에 표트르에게 입었던 은혜와 그의 용기에 감동하여 그를 후대합니다. 우여곡절 끝에 푸가초프의 반란은 결국 진압되는데, 표트르가 푸가초프와 친밀한 모습을 보였던 것이 화근이 되어 무고히 감옥에 갇히고 맙니다. 알고 보니 푸가초프와 내통하다 붙잡힌 쉬바브린이 표트르를 물고 늘어진 것이었습니다. 마리야는 약혼자인 표트르를 구하기 위해서 페트르부르크의 황제에게 탄원을 하러 갑니다. 그녀는 공원에서 한 부인을 만나게 되는데, 마리야는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그 부인에게 자신의 속사정을 모두 털어놓습니다. 그 후 그녀는 왕궁에 들어가서 황제를 만나게 되는데, 알고 보니 황제는 자신이 공원에서 만났던 그 부인이었습니다. 바로 예카테리나 여제였는데요. 황제는 표트르에 대한 사면령을 내리고 두 사람이 행복하게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이 작품은 마무리됩니다.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우연
그럼 이 작품의 감상평을 공유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이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우연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표트르와 마리야는 각기 자신의 인생을 바꿔놓을 만한 우연을 만나게 됩니다. 표트르는 우연히 부랑자인 푸가초프를 만나 은혜를 베풀고, 그것이 나중에 스스로와 약혼녀의 목숨을 구하게 됩니다. 마리야 역시 우연히 공원에서 황제를 만나게 되고, 그때 자신의 속사정을 이야기한 것이 계기가 되어 남편의 목숨을 구하게 되었습니다. 이 작품에서는 이처럼 중요한 사건들을 우연히 발생한 것으로 처리하는 모습을 보이는데요. 사실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유치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실제로 이런 기막힌 우연은 현실에서 잘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표트르와 마리야는 단순히 운이 좋았던 걸까요? 표트르는 하인인 사벨리치의 강력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비싼 외투를 푸가초프에게 주었습니다. 마음속에 강한 동정심을 따라 행동한 것이죠. 마리야는 그녀의 간절한 마음이 황제에게 남편의 억울한 상황을 털어놓도록 만들었고, 그것이 표트르가 사면되는 결정적 계기가 됩니다. 결과적으로 표트르와 마리야의 특정한 행동이 원인이 되어 기적 같은 일들을 만들어낸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표트르와 마리야가 아무리 운 좋게 푸가초프와 황제를 만났다고 한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면 기적 같은 일도 없었을 겁니다. 이 작품은 우연으로 보이는 것들도 알고 보면 모두 원인이 되는 어떤 행동의 결과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푸가초프의 호방함
다음으로 푸가초프의 호방함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반란군의 우두머리 푸가초프는 이 작품 속에서 상당히 호방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는 잔인하기만 할 것 같은 예상을 뒤엎고, 상당한 리더십과 넓은 도량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개 평민의 것이라고 보기 어려운 특징입니다. 푸시킨은 이 작품 속에서 반복적으로 푸가초프의 호방한 특성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제가 생각하기에 작가 개인이 푸가초프의 난을 바라보는 관점이 반영된 것 같습니다. 푸시킨을 소개하면서 그가 진보적인 정치사상을 가지고 있었고, 특히 푸가초프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고 말씀드렸었는데요. 그는 푸가초프의 난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는 입장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이 바로 푸가초프를 소설 속에서 호방하게 그리게 만든 것이죠. 마치 현대에 우리가 동학농민군의 우두머리 전봉준 장군을 대단한 리더십을 가진 훌륭한 인물로 생각하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푸시킨은 예카테리나 여제를 푸가초프 못지않은 도량을 가진 인물로 묘사하는 것도 재밌는데요. 반란군의 수괴를 좋게 평가했다는 당대의 비난을 피하고자 황제의 존재감을 부각하려고 한 시도였다고 생각한다면 지나친 억측일까요?
진정한 주인공 마리야
마지막으로 이 작품의 진정한 주인공이 누구인지 생각해 볼까 합니다. 이 소설의 제목이 대위의 딸인 이유와 연결되는 건데요. 저는 이 작품의 진짜 주인공은 마리야라고 생각했습니다. 소설의 중반부까지 마리야의 존재감은 그리 크지 않습니다. 명목상 주인공인 표트르에 비해 수동적인 모습을 보이죠. 이러한 마리야의 모습은 소설의 후반부에 이르러 극적인 반전을 보여주는데요. 그녀는 자기 자신의 힘으로 남편을 지켜내고, 그것을 통해 자기의 행복을 완성시켰습니다. 마리야의 이러한 자기주도적인 행동을 통해서 이 소설의 결말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소설의 진짜 주인공은 자신의 운명 앞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던 마리야였다고 생각합니다. 마리아는 당시 러시아의 여성상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기 남편을 구하기 위해 여성의 몸으로 서슴없이 황제를 찾아가는 마리아의 용기는 당시의 관점에서는 상당히 놀라운 내용이었을 겁니다. 푸시킨이 이 작품의 제목을 대위의 사위가 아니라, 대위의 딸로 정한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여기까지 대위의 딸 줄거리와 감상평이었습니다. 푸시킨은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고골 등 많은 러시아 작가들이 사랑하는 작가입니다. 러시아 문학에 관심이 많으신 분들은 이 작품을 비롯하여 푸시킨의 다른 작품들을 꼭 접해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