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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다섯째 아이' 작품 소개, 줄거리, 가족의 이중성, 태도, 사람의 변화

by 큰달이 2024. 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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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감상해 볼 소설은 도리스 레싱의 '다섯째 아이'입니다.

다섯째 아이

작가, 작품 소개

도리스 레싱은 1919년 이란에서 영국인 부모 밑에서 태어납니다. 그녀의 가족들은 이란, 남아프리카 등을 전전했는데요. 당시 영국의 식민지였던 곳에서 생활하면서 그곳 주민들의 삶을 생생하게 목격합니다. 도리스 레싱은 1949년에 런던에 이주하여 정착하고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합니다. 그녀의 작품들은 주로 20세기에 대두되었던 인종차별, 여성문제와 같은 다양한 사회 문제들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도리스 레싱은 이런 작품들을 통해 2007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다섯째 아이는 1988년에 출간된 도리스레싱 말년의 대표작입니다. 비교적 짧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임팩트 있는 내용 덕에 출간 당시에 큰 화제가 되었던 소설입니다. 이 작품은 가정과 사회에 대한 하나의 우화라고 볼 수 있는데, 이를 통해 독자는 자기 스스로를 돌아보게 됩니다. 다섯째 아이라는 제목에서 어떤 느낌을 받으시나요? 저는 어딘지 모르게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을 받았는데요. 사실 이 작품은 등골을 서늘하게 만드는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다섯째 아이를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다섯째 아이 줄거리

이 소설의 주요 줄거리를 소개하겠습니다. 주인공 부부인 데이비드와 해리엇은 회사의 파티에서 만난 사이입니다. 두 사람은 파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고 관조하던 중에 서로에게 끌린 건데요. 뜨거운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은 얼마 되지 않아 결혼을 하게 됩니다. 이상적인 전통적 가정상을 그리던 둘은 재정 능력을 초과함에도 불구하고 런던 교외에 있는 대저택을 구입합니다. 그들은 최소 6명에서 8명까지 되도록 많은 자녀를 가지고 싶었던 것이죠. 다행히 데이비드의 부유한 아버지인 제임스가 그들 부부를 재정적으로 지원해 주게 됩니다. 두 사람의 가정 생활은 비교적 평탄하게 이어지는데요. 그들은 매년 성탄절과 부활절, 여름 휴가 때마다 일가 친척들을 모두 초대해 파티를 벌입니다. 둘은 루크, 헬렌, 제인, 폴 네 남매를 연달아 낳고, 해리엇의 친정 어머니인 도로시가 아이들의 양육을 돕습니다. 한편 친척들은 많은 자녀를 갖고자 하는 둘을 만류하는데, 그들이 보기엔 두 사람이 자기 능력 이상으로 자녀를 낳으려고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해리엇은 다섯째 아이를 임신합니다. 그런데 이 아이는 뱃속에서부터 뭔가 심상치 않았죠. 해리엇은 네 아이를 임신한 경험이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뱃속 아이가 어색하게 느껴졌습니다. 그 다섯째 아이는 남자아이였고, 벤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벤은 생김새부터가 비호감이었을 뿐 아니라, 일반적 아기들과 달리 폭력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벤의 외모와 행동은 어른들조차 간담이 서늘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로 인해 매년 있던 친적 모임은 점점 줄어들고, 개와 고양이를 해친 것으로 추측되는 벤의 행동으로 인해 어른들의 공포는 극에 달하죠. 친지들은 의논 끝에 벤을 이름 모를 한 요양소에 보내버립니다. 양심의 가책을 받던 해리엇은 데이비드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홀로 벤을 보러 요양소를 찾게 됩니다. 요양소에서 해리엇은 구속복에 쌓여 마취된 벤을 보고 아이를 찾아 집으로 돌아옵니다.

하지만 남편 데이비드와 자녀들, 친지들의 반응은 싸늘했습니다. 그들은 남모르게 해리엇의 행동을 비난합니다. 벤이 집에서 양육되기 시작하면서 벤의 형제들과 친척들은 그를 두려워하는데요. 설상가상으로 해리엇과 데이비드의 사이도 멀어지게 됩니다. 어느날 해리엇은 벤이 정원 관리를 위해 부른 존이란 청년을 잘 따르는 것을 목격합니다. 그는 백수 청년으로서 거친 삶을 살고 있었는데, 해리엇은 그에게 용돈까지 주어가며 벤을 맡깁니다.

시간이 흘러 벤의 형제들은 벤을 피해 친척들의 집으로 뿔뿔이 흩어져버리고, 존과 그 무리들도 취직하여 동네를 떠나버립니다. 해리엇은 벤을 데리고 전문가의 상담도 받지만 별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 사이 벤은 성장해서 학교에 가게 됩니다. 그는 공부에 전혀 관심이 없이 불량 학생들과 어울려 다니고, 마침내 그들을 집 안에까지 끌어들이며 멋대로 지냅니다. 심지어 그들은 며칠씩 가출하기도 하는데, 해리엇은 어느 날 뉴스의 청소년 폭동 현장에서 벤 일행을 발견하고 충격을 받습니다. 그녀는 벤이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임을 예견하며 소설은 마무리됩니다.

가족의 이중성

이제 이 작품의 감상평을 공유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이 작품을 통해 드러난 가족의 이중성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 가족은 소중한 것이고,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키고 싶은 존재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족으로부터 기쁨과 평안을 얻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가장 많이 상처를 받는 대상도 남이 아니라, 가족인 경우가 상당히 많습니다. 이 작품은 이러한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데이비드와 해리엇 역시 가족이 무엇보다 소중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무리하면서까지 대저택을 구입하고, 때마다 친척들과 시간을 보낸 겁니다. 그런데 가족들은 두 사람에게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그들은 두 사람의 자녀 계획을 공공연히 비난하죠. 그런가 하면 벤의 존재는 가족이란 존재의 이중성을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냅니다. 가족인 벤을 지키려는 해리엇의 노력은 도리어 가족을 뿔뿔이 흩어지게 만듭니다. 우리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 취한 행동이 결과적으로 가정에 위협이 되는 경우를 종종 목격합니다. 이 소설은 가족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소중한 존재이지만, 동시에 가장 상처를 주는 존재라는 이중적인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름을 대하는 태도

다음으로 데이비드와 헤리엇이 각각 다름을 대하는 태도가 어떠했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볼까 합니다. 벤은 확실히 어딘가 다른 아이임에 틀림없습니다. 부모나 형제들과 전혀 다른 성격과 외모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다름이 단지 외적인 차이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폭력적 성향으로 발전하게 되자 그는 가족과 친지들로부터 비정상으로 낙인찍힙니다. 흥미로운 점은 벤의 이러한 성향이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에 대해 해리엇과 데이비드가 상반된 견해를 갖는다는 점입니다. 이것이 벤을 대하는 두 사람의 태도에 결정적인 차이를 가져오게 됩니다. 데이비드는 벤의 특성은 자신과 무관하다 생각하는 반면, 해리엇은 자신 속에 내재되었던 유전적 특성이 벤에게 발현되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괴로워하죠. 한마디로 벤이 다른 아이들과 다른 원인을 데이비드는 외부에서 찾는 반면에, 해리엇은 자신의 내부에서 찾았던 겁니다. 아무래도 남성보다는 자녀에 대한 일체감을 더 느낄 수밖에 없는 여성이었기에 이런 생각을 했던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한데요. 벤의 특성을 자신과는 완전히 다른 이질적인 것으로 파악한 데이비드는 벤을 격리하고자 했던 반면에, 자신의 내부에도 벤과 같은 폭력성이 내재되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해리엇은 벤을 어떻게든 포용하려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다름의 원인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그들을 대하는 태도 역시 확연하게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사람의 변화는 불가능한 것인가?

마지막으로 사람의 변화는 불가능한 것인가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벤의 폭력성은 부모에게조차 받아들여지기 어렵습니다. 이 때문에 요양소에 가게 되지만 해리엇은 그를 다시 집으로 데려옵니다. 이후 해리엇이 벤에게 보여준 보살핌은 눈물 겨운 것이었습니다. 그를 학교에도 보내주고, 그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만나게도 했으며, 때로는 혼을 내면서도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줍니다. 그러나 벤은 불량 학생들과 어울려 다니며 곳곳에서 문제를 일으킵니다. 엄마인 해리엇은 벤을 구하기 위한 자신의 선택이 남편을 비롯한 가정의 파괴를 불러왔다며 괴로워합니다. 이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서 해리엇은 불량배들과 어울려 다니는 벤을 보고 마침내 그를 포기합니다. 해리엇은 벤이 자신과 다른 존재이고,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 결론 내립니다. 이 작품은 과연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인지, 타고난 성격대로만 살아가게 되는지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사실 이 질문은 인류 역사와 함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이 소설의 벤은 사람은 결국 타고난 성격을 극복하기 어려운 것인가 하는 비관적인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이 소설을 읽은 다른 분들의 생각이 궁금해집니다.

 

여기까지 소설 다섯째 아이에 대한 감상평이였습니다. 이 소설은 자신과 다른 존재에 대한 인간의 근원적인 공포심, 그리고 그것이 자신과 가까운 존재일 때 나타나는 공황적 심리를 잘 그려낸 작품이었습니다. 밤에 읽으면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으니 저녁에 읽어보실 것을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