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감상평을 남겨 볼 소설은 헤르만 헤세의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입니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는 1930년에 출간된 작품입니다. '우정의 역사'라는 부제가 있기도 한데요. 우리나라에서는 '지와 사랑'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성장 소설의 대가인 헤르만 헤세의 작품답게 이 소설도 주인공의 성장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데미안이 싱클레어의 성장을 다루고 있다면, 이 작품은 골드문트의 성장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데미안'과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데미안에서는 데미안이 싱클레어의 인도자고, 싱클레어는 데미안을 성장의 목표로 삼습니다. 반면에 이 소설에서 골드문트는 나르치스와 다른 방향에서 대등한 위치로 성장해 나갑니다. 데미안과는 다른 성장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소설이 가지는 가치는 분명 독보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의 중요한 차이점은 데미안에 비해 이 작품의 분량이 훨씬 많다는 겁니다. 그럼 지금부터 나르시스와 골드문트를 함께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줄거리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의 주요 줄거리를 소개하겠습니다. 이 소설의 배경은 '마리아 브론'이라는 수도원입니다. 이곳의 수도원장은 다니엘이라는 사람입니다. 여기엔 나르치스라는 젊은 생도가 있는데, 또래보다도 우수한 지성과 기품으로 많은 사람의 주목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는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수습 교사로서 어린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게 됩니다. 어느 날 한 중년의 신사가 자기 아들을 수도원에 데려와 수도사로 만들어달라고 부탁하는데요. 그 아이가 바로 골드문트였습니다. 골드문트는 아름다운 금발을 가진 미소년으로서 싹싹한 성격으로 금방 주변 사람들을 사로잡습니다. 그는 자기보다 겨우 두어 살 많은 뿐인 나르치스가 벌써 수습 교사로 자기를 가르친다는 사실에 끌려 나르치스를 깊이 동경하게 됩니다. 나르치스는 나르치스대로 골드문트에게 관심을 갖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골드문트는 친구 아돌프의 꾐에 넘어가 밤에 몰래 수도원 밖에서 또래 여자들을 만나고 돌아오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골드문트는 양심의 가책으로 시름시름 앓게 되고, 나르치스는 골드문트를 데리고 양호실에 갔다가 하염없이 눈물을 터뜨린 골드문트를 위로하며 친구가 됩니다. 하지만 그 이후에 어찌 된 일인지 나르치스는 골드문트와 거리를 두고, 골드문트는 서운해합니다. 나르치스는 골드문트에게 우리는 서로 다르니 각자에게 맞는 길을 걸어야 한다고 이야기하죠. 어느 날 골드문트는 수도원 밖에서 약초를 캐다가 리제라는 여자를 만나 육체적 관계를 갖게 되고, 그는 수도원을 떠나 방랑 생활을 시작합니다. 리제가 떠난 후 혼자가 된 골드문트의 방랑은 계속되고, 한 부유한 기사의 집에서 머물게 되는데요. 기사의 아름다운 딸인 뤼디아와 율리아가 그에게 빠지는 바람에 골드문트는 쫓겨나게 됩니다. 다시 이곳저곳을 방랑하던 골드문트는 한 예배당에서 너무나 아름다운 마리아상을 보고 그것을 만든 니클라우스라는 명인을 찾아가 문하에 들어가 예술가의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골드문트는 나르치스를 떠올리며 사도 요한의 상을 제작하고, 상당히 훌륭하게 완성합니다. 니클라우스는 재능 넘치는 제자 골드문트를 위해 이례적으로 빠르게 장인이 되도록 해주지만, 그는 예술가라기보다는 기술자에 가까운 스승에게 실망을 느끼고 다시 방랑 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는 방랑 중에 흑사병이 창궐하는 도시에서 레네라는 여자를 만나게 되지만, 얼마 후 그녀는 흑사병으로 사망하게 됩니다. 레네의 시신을 화장한 골드문트는 니클라우스의 도시로 되돌아오지만, 스승은 이미 사망한 후였습니다. 골드문트는 그 도시에서 황제가 파견한 하인리히 백작의 애첩인 아그네스를 우연히 보고 사랑에 빠지고, 두 사람은 밀회를 하다가 하인리히에게 발각됩니다. 이후 골드문트는 감옥에 갇힌 신세가 되죠. 우연히 죄수가 된 골드문트를 본 한 사제가 백작에게 부탁하여 그를 면회하러 오는데, 놀랍게도 그 사제는 나르치스였습니다. 나르치스는 수도원장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정치력을 발휘하여 골드문트를 석방시킵니다. 수도원에 돌아온 골드문트는 자신의 예술혼을 불태울 장소를 얻고 많은 작품을 남깁니다. 나르치스는 골드문트의 성장을 보고 기뻐하죠. 그는 골드문트의 필생의 역작을 보고 크게 감동하며 영감을 얻기도 합니다. 골드문트는 이 작품을 마지막으로 다시 방랑을 떠났다가 수도원으로 되돌아오는데, 이미 그의 건강은 악화된 상황이었습니다. 그는 나르치스 곁에서 최후를 맞이하게 됩니다.
성장이 관계에 미치는 영향
이제 이 작품에 대한 감상평을 공유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이 작품이 다루고 있는 성장의 관계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성장 소설의 대가 헤르만 헤세답게 이 작품 역시 등장 인물의 성장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제가 관심 가지게 된 부분은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각자의 성장 이야기보다도 두 사람의 관계였습니다. 골드문트는 첫 방랑 생활을 시작하기 전에는 친구인 나르치스를 모델로 삼고 닮고자 합니다. 그는 자신의 노력이 나르치스를 기쁘게 하고 두 사람의 관계를 돈독하게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나르치스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나르치스는 골드문트가 자신과 상이한 특성을 가진 인간인이라는 사실을 간파하고, 너 자신이 되라고 충고합니다. 자기 자신인 나르치스와 자기 자신인 골드문트가 되어야만 그들의 관계가 의미 있고 완전해진다는 겁니다. 골드문트는 처음에 나르치스에게 서운함을 느끼지만, 긴 방랑 생활을 통해 자신이 나르치스와 다른 인간임을 인식하고 나서야 둘의 관계가 성장합니다. 자유롭고 대등한 관계가 성립되자 나르치스도 골드문트로부터 배우게 되죠. 이 작품은 관계를 위해 자신을 포기하는 것보다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 더 건강한 관계임을 보여줍니다. 다름이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상호 보완되는 것이라는 작가 헤르만 헤세의 메시지가 잘 두드러지는 부분이라고 하겠습니다.
골드문트에게 어머니란 존재
다음으로 골드문트에게 어머니란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골드문트는 아버지 손에 이끌려 수도원에 들어오기 훨씬 이전에 어머니와 헤어졌는데, 무희였던 어머니는 아마도 바람이 나서 떠나버린 것으로 추정됩니다. 골드문트는 자신이 수도사가 되길 바랐던 아버지의 희망을 자신의 소망으로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나르치스는 골드문트가 아버지보다는 그의 어머니를 닮았음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골드문트 역시도 어머니의 존재가 자신을 부름을 깨닫고, 어머니를 찾아 나선 것이 방랑의 시작이 됩니다. 그에게 있어서 어머니라는 존재는 자신의 원형입니다. 그래서 자신을 찾기 위해 떠난 그 여행에서 어머니는 그의 목표가 되는 존재로 나타납니다. 그에게 있어서 예술조차도 자기 원형인 어머니를 찾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습니다. 골드문트는 자기 자신을 찾아낸 이후에서야 자신이 어머니와 함께 있다는 것을 깨닫고 평안한 최후를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그에게 어머니는 자기 자신임을 보여주는 것이죠.
자신을 찾을 수 있었던 요소
마지막으로 나르치스와 골드문트가 각자 자신을 찾아낼 수 있었던 외적 요소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는 각각 자기 나름대로 스스로를 발견하여 성장하는 것에 성공합니다. 한 사람은 지성의 영역에서, 한 사람은 감성의 영역에서 다르게 성공할 수 있었던 요소는 무엇일까요? 저는 그 해답을 이 소설의 초반부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이 소설의 배경인 마리아브론 수도원은 엄격함보다는 자유로운 분위기였습니다. 이런 자유로운 분위기는 다양성에 대한 인정으로 이어질 수 있었고, 전통적 길을 걷는 나르치스뿐만 아니라 골드문트까지도 포용할 수 있었습니다. 골드문트가 말년을 수도원에서 보낼 수 있었던 이유는 물론 수도원장이 된 친구 나르치스 덕분이지만, 수도원의 분위기 때문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결국 자신을 찾는 성장의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다양한 사람들을 끌어안는 포용적 분위기라는 것이겠죠.
여기까지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에 대한 감상평이었습니다. 데미안이나 수레바퀴 아래에서와는 또 다른 감상을 주는 헤르만 헤세의 걸작이었습니다. 인간관계 때문에 자신을 숨겨야만 하는 모든 분들에게 처방이 될 만한 책이라는 생각이 드는 좋은 작품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