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감상평을 남겨 볼 소설은 오노레 드 발자크의 '나귀 가죽'입니다. 나귀 가죽은 발자크가 남긴 100여 편의 작품들 중에서도 꽤 재미있는 편입니다. 1831년에 발표된 소설로 그가 오랜 시간 동안 구상하고 집필한 문학 총서인 인간 희극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발자크 소설들의 재미있는 점은 다른 소설의 등장인물이 마치 카메오 출연을 하듯이 등장하곤 한다는 겁니다. 이 소설에서도 고리오 영감의 주인공 외젠 라스티냐크가 나옵니다. 발자크가 위대한 작가인 이유는 인간이란 존재에 대한 깊은 고민이 작품 속에 담겨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나귀 가죽에서는 욕망하는 인간의 모습이 너무나 잘 드러나 있습니다. 소원을 들어주는 나귀 가죽이라는 설정 자체도 흥미롭게 느껴지는 수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귀 가죽 줄거리
이 소설의 주요 줄거리를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주인공인 라파엘은 어린 시절 아버지의 엄한 양육을 받으며 자랍니다. 그의 집안은 나폴레옹 치하에서는 괜찮았지만, 왕정복고가 이뤄지면서 급격히 가세가 기울기 시작합니다. 많은 빚까지 진 아버지는 얼마 후 화병으로 사망하고, 성인이 된 라파엘은 상속받은 빚 때문에 생활고에 시달립니다. 그는 그 나이대 젊은 남자들이 흔히 그렇듯이 열정적인 사랑을 꿈꾸지만 여자들에게 관심을 받지는 못합니다. 라파엘은 빚을 갚느라 궁핍한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때문에 값싸고 허름한 하숙집을 구하는데, 하숙집 주인 고댕 부인에게는 폴린이라는 10대 초반의 딸이 있었습니다. 고댕과 폴린은 불우한 라파엘에게 관심을 가지고 따뜻하게 대해주고, 라파엘은 폴린에게 가정교사처럼 피아노 등을 가르쳐줍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귀부인들과 관계를 맺으며 그들의 후원으로 화려한 생활을 즐기고 있는 친구 라스티냐크가 라파엘에게 페도라 부인을 소개해 줍니다. 페도라는 많은 재산을 바탕으로 화려한 생활을 하고 있었고, 눈부신 미모로 남성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라파엘 역시 페도라에게 푹 빠지고, 자신의 생활고를 숨기기 위해 무리하게 돈을 들여 겉치장을 해 그녀에게 접근합니다. 하지만 페도라는 연애에는 큰 관심이 없는 여자였고, 라파엘의 뜨거운 구애에도 냉철하게 밀당을 하면서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죠. 그러던 어느 날 라파엘은 몰래 페도라의 자택에 잠입하여 숨어들고, 그날 모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엿듣게 됩니다. 페도라와 라스티냐크의 대화 중 라파엘이 화제에 오르고, 페도라가 그를 그다지 좋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날 밤 라파엘은 자기 침대에서 잠이 든 페도라를 한참 동안 내려다보며 상념에 잠겨 있다가 조용히 저택을 떠납니다. 얼마 후 라파엘은 페도라와 단 둘이 만나 자신의 궁핍한 처지까지 공개하는 승부수를 띄우며 사랑을 구하지만, 페도라는 끝내 그를 거절합니다. 라파엘은 그녀에게 차이고 자포자기합니다. 방탕한 생활을 하고 얼마 남지 않은 돈마저 도박장에서 탕진합니다. 그는 센 강에 뛰어들려다가 일단 마음을 추스릅니다. 그리고 거리를 걷다가 우연히 한 골동품 상점에 들어가게 됩니다. 100살이 넘었다는 상점 주인은 모든 소원을 들어주지만, 그때마다 크기가 줄면서 생명을 빼앗는다는 나귀 가죽을 소개합니다. 라파엘은 그가 헛소리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결국 계약을 맺고 나귀 가죽을 가지고 밖으로 나옵니다. 그는 거리에서 에밀이라는 친구와 만나고, 타유페르라는 이름의 신문사 사장이 파티를 연다며 함께 가자고 청하죠. 라파엘과 에밀이 참석한 파티는 지극히 호화롭고 향락에 찌든 파티였습니다. 라파엘은 그곳에서 에멜에게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털어놓고, 막대한 연금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합니다. 바로 그때 한 사람이 파티장으로 급히 입장해 라파엘을 찾습니다. 그는 라파엘에게 그의 먼 친척이 600만 프랑이라는 막대한 유산을 남겼다고 말합니다. 졸지에 부자가 된 라파엘은 도리어 공포에 떠는데, 골동품 가게 주인이 말한 대로 나귀 가죽이 작아졌기 때문에 자신의 생명이 단축되었다고 여긴 것이었습니다. 그는 거대한 저택을 사들여 인테리어를 하고는 두문불출한 채 지냈는데, 무언가를 원한다는 말만 하면 그것이 이루어지고 가죽이 서서히 줄어들기 때문이었습니다. 극심한 공포감에 시달리던 라파엘은 물리학자와 화학자를 찾아가 가죽을 늘려보기 위해 갖가지 시도를 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한편 라파엘은 한 극장에서 우연히 옛 하숙집 주인 딸이던 폴린과 재회합니다. 그 사이 그녀는 엄청난 미인으로 성장했고, 타국으로 떠났던 아버지가 막대한 부를 축적해 돌아와 부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애초에 서로 호감이 있었던 두 사람은 연인 사이로 발전하는데, 이상하게도 라파엘은 기침을 심하게 하며 건강을 잃어갑니다. 그는 유명한 의사들에게 진료를 받지만 신통치 않고 결국 요양차 온천마을로 향하게 되는데 그곳 사람들과도 마찰을 빚습니다. 라파엘은 거기서 한 남자와 결투를 벌이고, 나귀 가죽의 힘으로 승리합니다. 이후 라파엘은 온천마을을 떠나 한 산골에 칩거합니다. 하지만 그곳 사람들의 동정심에 진물이 난 그는 다시 파리의 저택으로 돌아오고, 거기서 폴린의 품에서 숨을 거둡니다.
소원을 이뤄주는 나귀 가죽
이제 이 작품의 감상평을 공유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나귀 가죽이라는 설정이 왜 훌륭하게 느껴졌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소설은 간단히 요약해 보자면 인생이 꼬일 대로 꼬여버린 주인공 라파엘이 신비로운 힘을 가진 나귀 가죽을 얻으면서 인생 역전을 이룬 이야기입니다. 나귀 가죽은 계약자의 모든 소원을 들어주지만, 그 대가로 생명을 단축시키는 부작용이 있습니다. 소원을 성취하는 대가가 분명하다는 점에서 아라비안나이트에 나오는 알라딘의 요술램프와는 구분됩니다. 사실 실제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는 자신이 원하는 무엇인가를 얻어내기 위해서 반대급부가 필요하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소설에서 그 반대급부를 계약자의 생명이라고 설정한 것처럼,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노심초사가 실제로 우리의 건강을 해치거나 시간을 빼앗아 가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제가 생각하기에 나귀 가죽의 설정 중 가장 흥미롭게 느껴지는 부분은 바로 소원을 들어줄 때마다 크기가 줄어든다는 점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추상적으로만 인식하고 있는 소원 성취의 대가를 가시적으로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이 가시성 때문에 라파엘은 막대한 부를 손에 거머쥐었으면서도 그것을 누리지 못하고 두문불출한 채로 지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흔히 사람들은 자신이 잃은 것을 체감하지 못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던져가며 소원을 이루기 위해 노력합니다. 하지만 만약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갖기 위해서 잃을 수밖에 없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게 된다면, 아무리 인간이 욕망하는 존재라고 하더라도 분명히 다른 삶의 방향을 택하게 될 것 같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작가가 창작한 나귀 가죽의 설정은 분명히 흥미로운 부분이 있습니다.
폴린과 페도라
다음으로 폴린과 페도라에 대해서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라파엘은 생전에 2명의 여자를 사랑했는데, 폴린과 페도라가 바로 그들입니다. 폴린의 경우에는 라파엘을 사랑해서 그의 마음을 받아들이고 연인 사이가 되었지만, 페도라의 경우는 끝까지 거부하여 짝사랑에 그치고 맙니다. 이 작품의 에필로그는 폴린과 페도라의 후일담을 매우 짧게 은유적으로 보여주고 있는데, 상징적인 의미가 큰 것 같습니다. 먼저 폴린의 경우 세 차례에 걸쳐서 그녀가 어떻게 되었는지 설명하고 있는데, 길면서 간접적이고 시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자세히 뜯어보면 폴린은 라파엘이 죽은 후 곧이어 사망했거나 혹은 종적을 감춘 것처럼 보입니다. 이를 통해 폴린은 진정으로 라파엘을 사랑했고, 그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자신이 존재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봤던 것 같습니다. 반면에 페도라의 경우 짧고 직접적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라파엘의 사망과 무관하게 똑같은 일상을 살아가죠. 끝내 라파엘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았던 것처럼 끝까지 차갑고 냉정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인데, 흥미로운 점은 페도라가 사회를 상징하는 인물이라는 겁니다. 그녀를 통해서 사회의 냉엄한 특징을 알 수 있죠. 누가 없어지더라도 사회는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돌아간다는 것과 라파엘이 페도라의 사랑을 얻지 못했던 것처럼 모두가 사회에서 원하는 것을 갖지 못한다는 겁니다. 이 작품에서 라파엘이 사랑했던 두 여자는 상반된 반응과 후일담을 통해 독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있습니다.
힘과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은 별개다
마지막으로 사실 중요한 것은 힘이 있더라도 그것을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은 별개라는 겁니다. 누구나 알라딘의 요술램프를 가지고 싶어 하듯이, 아마도 이 작품을 읽는 사람들은 모든 소원을 들어주는 힘을 가진 나귀 가죽을 원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주인공 라파엘은 막상 나귀 가죽을 손에 넣고 나서는 그것을 표구해서 걸어두고는 두문불출합니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막대한 힘을 얻고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몰라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겁니다. 그가 이렇게 된 이유는 근본적으로 소원이 이루어질 때마다 가죽의 크기로 상징되는 자신의 생명이 줄어들기 때문이죠. 하지만 좀 더 생각해 보면, 그걸 사용하는 방법을 알지 못한 채 너무나 큰 힘을 얻었기 때문에 당황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누구나 힘을 가지게 되면 그것을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 착각하지만 사실은 아무도 이를 장담할 수 없는 겁니다. 힘을 가졌다고 해서 그것을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을 저절로 습득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죠. 힘과 그것을 적절히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은 분명히 별개의 것이라는 점인데, 어떤 사람들은 이를 혼동해 힘부터 가지려고 하고 자리부터 오르려고 합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능력 없는 사람이 힘을 가지게 되는 것은 어린아이가 총이나 칼을 가지게 된 것처럼 위험천만한 일이죠. 그나마 라파엘은 자신이 나귀 가죽의 힘을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이 없다는 것을 자각하고 두문불출하기라도 했지만, 끝까지 주제도 모르는 채로 지내는 사람도 실제로는 많습니다. 이 작품은 힘과 그것을 사용할 줄 아는 기술은 분명 별개의 것이며, 힘을 가지기 전에 기술을 갖추고 있는지를 먼저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여기까지 나귀 가죽 줄거리와 감상평이었습니다. 비록 비극적으로 끝났지만, 나귀 가죽의 설정과 스토리가 매우 흥미로운 소설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