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포스팅에서 다룰 책은 크누트 함순의 굶주림입니다. 노르웨이의 국민작가라고 할 수 있는 크누트 함순은 1859년 노르웨이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납니다.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이었는지 정규 교육을 받지 못했다고 하는데요. 17세에 자기 돈으로 소설을 출간할 정도로 문학에 대한 열정은 대단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후에 그는 아메리칸 드림을 안고 미국으로 건너가 여러 직업을 전전했지만 결국 귀국하고 맙니다. 이 때문이었는지 그는 미국 문명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를 가지게 되었죠. 크누트 함순은 1890년에 발표한 굶주림이라는 작품으로 문단의 주목을 받게 되는데요. 1920년에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합니다. 굶주림은 1890년에 발표된 크누트 함순의 대표작이면서 작가로서의 명성을 안겨주는 소설입니다. 노르웨이의 도시인 크리스티아나(현재의 오슬로)에서 생활고에 시달리는 한 작가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는데요. 1886년 겨울에 크누트 함순이 직접 체험한 극심한 생활고가 반영된 자전적 이야기입니다. 이 작품 속에는 단순히 육체적 굶주림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작가의 갈망이 드러나 있습니다. 1인칭 시점으로 주인공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서술하면서 심리 상태를 너무나 잘 표현한 심리 소설의 수작이라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굶주림 줄거리
주인공은 노르웨이 크리스티아나에 사는 작가로서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는 돈을 벌지 못해 오랜 기간 동안 굶주리며 비참한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이미 많은 물품을 전당포에 저당 잡힌 그는 자기가 입고 있던 조끼까지 벗어주고 소액의 돈을 구해 빵과 치즈를 사서 먹습니다. 그 후 그는 성 주변을 지나는 2명의 여자를 만나게 되고, 괜히 그들을 따라가 추근대며 장난질을 치는데 여자들은 그가 술에 취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하숙집에 돌아와 갑자기 떠오른 영감으로 글을 쓰고, 신문사의 편집장을 찾아가 원고를 주고 옵니다. 극심한 굶주림에 가지고 있던 담요까지 저당잡힐 생각을 하지만, 그 담요는 사실 다른 사람에게 빌린 것이었기 때문에 양심의 가책을 받고 그만두고 맙니다. 그러던 그에게 신문사로부터 편지가 도착합니다. 그 편지에는 그가 제출한 원고가 채택되었다는 소식과 함께 10크로네의 원고료가 들어 있어서 한동안 배고픔을 면하게 됩니다. 그 후 몇 주일이 지나 원고료는 다 써버리고 그는 다시 굶주림에 시달리게 됩니다. 그는 경비소에 가서 노숙자로 신고를 하고 하룻밤을 묵는데 수용소 방에서 밤을 지내면서 어둠이 기묘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그는 오랜 시간 먹지 못한 탓에 정신적인 문제를 겪고 있었던 겁니다. 그는 돈을 구하기 위해 아무 가치도 없는 자기 옷의 단추들을 뜯어모아 전당포에 찾아가지만, 당연히 퇴짜를 맞습니다. 상심한 마음으로 전당포에서 나오던 그는 우연히 전당포에 들어가던 친구를 만나고, 마찬가지로 궁핍한 친구가 그에게 5크로네를 줍니다. 주인공은 그 돈으로 일주일을 버티지만 그 이후 또다시 지긋지긋한 굶주림에 시달리게 됩니다. 그는 자기가 쓴 글을 들고 편집장인 '사령관'을 찾아가는데, 사령관은 당장 글을 읽을 시간이 없다며 원고를 두고 가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돈이 급하다면 원고료를 선불로 주겠다고 하지만 그는 자존심을 세워 거절합니다. 어느 날 그는 잡화점에서 양초를 구걸하는데, 그가 돈을 낸 것으로 착각한 점원의 실수로 양초와 거스름돈까지 받아 챙기게 됩니다. 횡재한 그는 그 돈으로 음식을 먹고 하숙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한 여자를 만나게 됩니다. 그녀는 알고 보니 과거 성 주변을 지나던 두 여자 중 하나였습니다. 두 사람은 가까워지고, 그는 여자를 일라얄리라고 부릅니다. 그는 일라얄리 앞에서 떳떳하고 싶은 마음에 실수로 받은 거스름돈을 길거리에서 과자 파는 노점상에게 줘버립니다. 극심한 궁핍에 시달리며 방황하던 그에게 편집장이 찾아오고, 그는 10 크로네를 주면서 이 돈을 받고 좋은 글을 많이 쓰라면서 주인공을 격려합니다. 그 후 그는 일라얄리의 집까지 가게 되지만, 그의 궁핍한 사정을 알게 된 일라얄리와 헤어지게 됩니다. 겨울이 오고 사령관이 준 돈으로 한 여인숙에 묵던 그는 여주인의 도움 요청을 받지만, 그것을 제대로 해결해주지 못하자 여주인의 괄시를 받기 시작합니다. 여주인은 그가 돈도 없고 재능도 없다고 생각한 겁니다. 그는 자기가 묶던 방도 다른 손님에게 빼앗기지만 추운 겨울날 거리로 나앉을 수는 없어 주인 집에 얹혀서 생활합니다. 그러다 어느 날 그는 일라얄리로부터 10크로네를 전해 받는데, 자존심에 그 돈을 여주인에게 던져버리고 나와버립니다. 굶주린 그는 지난번에 거스름돈을 모두 주었던 길거리 과자 노점상을 찾아가 자기가 준 돈만큼 과자를 먹어야겠다며 좌판에 과자를 모두 먹어치웁니다. 그리고 나서 그는 항구로 가 한 배의 선장을 설득하여 선원이 되어 도시를 떠납니다.
명작으로 손꼽히는 이유
이 소설은 주인공의 굶주림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작가로서 성공하고 싶은 열망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주인공의 굶주림과 열망은 우리 모두의 욕망을 대변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우리도 주인공이 음식이나 성공을 갈망하는 것처럼 각자 원하는 어떤 것을 갈망하면서 살고 있으니까요. 주인공은 때마다 필요한 도움을 받아 끼니를 해결하지만 그것도 그때뿐입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굶주림에 시달리게 되죠. 이러한 모습도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설령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킨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일시적인 것이고, 얼마 가지 않아 또다시 무언가를 갈망하게 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겁니다. 즉 인간의 끝없는 욕심을 보여주는 것이죠. 어찌 보면 인간은 욕망하는 존재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이 작품은 끊임없는 결핍을 느끼고 욕망하는 인간의 모습을 잘 묘사하고 있기에 시대를 뛰어넘는 명작의 반열에 서게 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먹는 장면에 대한 혐오
이 작품 속에서 주인공은 특이하게도 다른 사람이 음식을 먹는 장면을 보며 혐오감을 느끼는 모습을 보입니다. '주름 투성이의 짐승 발톱 같은 그 늙은 10개의 손가락이 불결하게 기름기 흐르는 버터 바른 빵을 움켜쥐고 있었다. 그것을 보니 구역질이 났다.', '그녀의 앞에 있는 작은 탁자는 다리가 휘어질 듯이 맛있는 것들로 들어차 있었다. 나는 비위가 거슬려서 고개를 돌렸다'라는 문장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굶주림에 시달려 음식을 갈망하는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의 먹는 모습을 보고 대리만족을 느낄 것 같은데 그러지 않습니다. 사실 우리는 같은 욕망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 대해 경쟁심에서 비롯된 혐오감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가지고자 하지만 가지지 못하는 것을 누군가 가지고 있다면, 그것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기보다는 도리어 혐오감을 느끼고 고개를 돌리게 되는 것이 사람들의 심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을 때 속에서 치미는 혐오감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죠.
비참한 심리 묘사
앞서 이 작품이 심리 소설의 수작이라 평가받는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 이유가 인간의 비참한 심리를 너무나도 잘 묘사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굶주림에 고통받는 주인공은 배고픔을 해결하려는 본능적인 욕구와 정도를 따르려는 양심의 소리 사이에서 끝없이 갈등합니다.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무슨 짓이라도 하고 싶지만 그때마다 제동을 거는 것은 그의 양심이고, 동시에 그 양심의 소리를 비웃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의 굶주림인 것입니다. '한 끼 식사를 위해 남의 물건을 저당 잡히고, 스스로의 비난을 먹고 마시고, 뻔뻔하게 스스로 불한당이 되고, 자기의 양심 앞에 두 눈을 내리깔다니 안 된다. 절대 안 된다'라는 생각과 '이번에는 진지해야 해! 바보 같은 짓은 하지 말아! 양심이라고? 유치한 짓은 말아. 양심을 간직하기엔 넌 너무 가난해. 배가 고프잖아.'라는 생각은 같은 사람의 생각입니다. 우리 모두는 살기 위해 양심을 외면하기도 하고, 양심의 소리 때문에 본능을 억누르기도 하면서 살아갑니다. 이러한 모순적인 생각은 아무래도 비참한 현실에서 좀 더 극적이고 격렬하게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이 작품은 모순된 생각으로 갈등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비참한 심리를 잘 그려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