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감상해 볼 작품은 안톤 체호프의 갈매기입니다. 갈매기는 체호프의 4대 희곡 중 하나이며, 1896년에 발표되었습니다. 발표 당시에는 연출이 문제가 되어 작가도 자리를 박차고 나올 정도로 실패작이었다고 합니다. 다행히 1898년 모스크바 예술극단이 이 작품을 성공적으로 재공연 했다고 합니다. 이 작품은 셰익스피어의 비극들에 간줄 수 있을 정도로 비극적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주인공은 시대를 뛰어넘어 젊은이들의 고뇌를 보여줍니다. 그만큼 고전이 가지는 힘을 너무나 잘 드러내는 작품 중 하나입니다.
갈매기 줄거리
이 작품의 주요 줄거리를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주인공인 트레플례프는 외삼촌인 소린이 소유하고 있는 영지에서 지내면서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형식의 글을 쓰는 작가 지망생입니다. 그의 어머니 이리나는 유명 배우였고, 남편이 일찍 떠난 후에 자유로운 생활을 하면서 유명한 작가인 트리고린과 연인 사이였죠. 트레플례프는 트리고린과 같은 구세대 문학 작가들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었고, 게다가 어머니와 연인 사이라는 사실을 불쾌하게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트레플례프는 전혀 새로운 형식의 희곡을 써서 배우 지망생인 니나를 세워 사람들 앞에서 공연을 하죠. 이 자리에는 소린뿐 아니라 트레플레프의 어머니인 이리나, 그리고 그녀의 연인 트리고린 등이 참석을 합니다. 그의 연극은 예상했던 대로 상당히 파격적인 내용이었고, 이리나가 아들의 작품에 비아냥대자 격노한 트레플례프는 연극을 중지해 버리고 퇴장합니다. 이리나는 아들이 새로운 형식을 사람들에게 강요하고 있다며 불만을 표시합니다. 공연이 엉망이 되고 아들은 화를 내며 뛰쳐나갔어도 이리나는 신경 쓰지 않고, 그녀의 애인 트리고린도 낚시를 즐기며 시간을 보냅니다.
한편, 트레플례프는 배우 지망생 니나를 짝사랑하고 있었습니다. 니나는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자라나 성공과 명성을 동경하고 있었습니다. 니나는 성공한 여배우 이리나와 그녀의 애인이자 유명 작가인 트리고린을 부러워합니다. 그런데 트레플례프가 니나에게 나타나 자신이 사냥했다며 갈매기를 내놓습니다. 그러면서 니나가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며, 자신도 이렇게 끝날 것만 같다고 말합니다. 트레플례프는 니나가 트리고린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챈 것이었습니다. 트레플례프는 마침 트리고린이 나타나자 꼴 보기가 싫어 자리를 피합니다. 니나는 트리고린에게 부러움과 호감을 듬뿍 담아 이야기를 나누고, 트리고린은 트레플례프가 두고 간 갈매기를 보며 트레플례프가 니나를 파괴할 것 같다는 암시를 합니다. 니나는 트리고린에게 이리나와 함께 바로 떠나지 말고, 영지에 좀 더 머물라고 대놓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그 사이 끝을 선택했다가 살아난 트레플례프가 트리고린과 결투하겠다며 이야기하고 다녀 분위기를 뒤숭숭하게 만듭니다. 그런가 하면 니나는 트리고린에게 푹 빠져서 은근하게 자신의 마음을 그에게 알리죠.
한편, 트리고린의 연인인 이리나는 트리고린에 대한 니나의 호감을 눈치채고, 아들이 그를 미워한다는 것을 알고 영지를 떠나고자 합니다. 니나의 마음을 알게 된 트리고린은 그녀에게 자신을 찾아오라며, 몰래 모스크바의 주소를 알려줍니다. 그 이후 2년의 시간이 흐릅니다.
그 사이 니나는 트레플례프를 떠나 트리고린을 찾아가고, 두 사람은 동거를 하다가 아이까지 낳았습니다. 그러나 아이는 곧 숨을 거두고, 니나에 대한 애정이 식은 트리고린은 뻔뻔하게 그녀를 버리고 다시 이리나에게 돌아갑니다. 버려진 니나는 다시 비밀리에 영지에 돌아와 있었고, 트레플례프는 영지에 남아 신인 작가가 되어 계속 글을 쓰면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리나와 트리고린이 영지로 찾아옵니다. 그들은 자택의 손님들과 함께 카드놀이를 하며 거하게 즐기죠. 트리고린은 과거 니나와의 추억이 담긴 갈매기를 박제로 만들어 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었는데, 그것도 외면한 채 그녀를 완전히 잊은 모습을 보입니다. 트레플례프는 그들과 어울리기 싫어 홀로 있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갑자기 니나가 찾아옵니다. 그는 니나를 사랑한다며, 자신을 떠나지 말라고 부탁합니다. 그러나 니나는 유명한 배우가 되겠다는 꿈을 버리지 않고 있었습니다. 니나는 끝내 트레플례프의 사랑을 거부하며 떠나버리고, 좌절한 트레플례프는 스스로 숨을 거둡니다.
갈매기가 상징하는 것
이 희곡의 제목이기도 한 갈매기는 주인공 트레플례프의 비극적인 최후를 암시하는 매우 중요한 장치입니다. 원래 트레플례프의 연인이던 배우 지망생 니나는 당대 유명 작가인 트리고린에게 빠져 그를 배신합니다. 배신의 결정적 계기가 바로 갈매기죠. 그가 야심차게 내놓은 전위적인 작품이 어머니 이리나로부터 비판받고, 자신의 연인 니나마저 트리고린에게 마음을 빼앗깁니다. 그런 상황에서 트레플례프는 니나에게 갈매기를 가져옵니다. 그는 놀란 니나에게 갈매기가 백척간두에 서 있는 자신의 처지나 마찬가지라고 설명하죠. 트레플례프는 갈매기와 자신을 동일시하며 괴로운 처지를 보여주는 상징으로 삼습니다. 그러나 트리고린은 이를 다르게 해석합니다. 트리고린은 트레플례프가 내려놓고 떠난 갈매기가 니나를 상징한다고 해석한 겁니다. 이 해석 때문에 트레플례프에게 희생되고 싶지 않았던 니나는 트리고린에게 마음을 주고 맙니다. 언뜻 생각하면, 불우한 상황에 놓인 연인을 한순간에 배신하고 다른 남자를 찾아간 니나의 모습이 좋지 않게 보입니다. 그런데 사실 니나의 마음은 단순히 트리고린의 상징 조작으로 변했다고 볼 수 없습니다. 그녀는 이전부터 이미 자신을 갈매기에 비유해 왔습니다. 작품의 초반부에 '갈매기처럼 끌린다'라고 표현하는 니나의 말과 마지막 부분에 등장하는 박제된 갈매기 등을 통해 이를 알 수 있죠. 이렇게 보면 트레플례프가 자신을 갈매기에 비유한 것은 사랑하는 니나와 자신을 동일시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트리고린의 말로 인해서 모든 것이 어그러진 겁니다. 니나는 트레플례프는 배제한 채 갈매기와 자신만을 동일시하게 되며 공포심이 생긴 것이죠. 결론적으로 이 작품에서 갈매기는 니나와 트레플례프 모두를 상징하며, 트레플례프의 행위는 니나와 자신의 비극적 결말을 암시하는 행동으로 볼 수 있습니다.
세대 간 갈등
이 작품에서 두드러지는 갈등 요소 중 하나는 연극의 새로운 유형을 주장하는 트레플례프와 전통적 형식을 고수하고자 하는 어머니 이리나 사이의 갈등입니다. 특히 작품 초반에 나타나는 두 사람의 갈등은 단순히 연극에 대한 견해 차이를 넘어서 세대 간 갈등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트레플례프의 입장에서 기존의 연극은 틀에 박힌 뻔한 형식과 내용을 유지하고 있었고, 그는 이런 전통적인 양식에서 벗어난 새로운 연극을 추구하죠. 젊은 그에게 있어서 기존 연극계는 이미 기득권화되고, 보수화되어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자신이나 니나 같은 신예가 자리 잡기란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어려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트레플례프에게는 새로운 형식을 통해 기존에 없던 시장을 만드는 것이 절실했습니다. 그래서 그가 어머니 앞에서 공연하는 작품은 기존에는 없던 전위적인 성격의 작품이었죠. 반면에 전통적인 연극계를 대표하는 이리나의 입장에서 아들 트레플례프의 전위적인 시도는 기성 연극계에 대한 강요로 받아들여집니다. 원치 않는 사람에게까지 억지로 변화를 받아들이도록 강요하는 것으로 비춰진 것이죠. 앞서 말한 대로 이들 두 사람의 모습은 전형적인 세대 간 갈등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청년 세대의 입장에서 기존 질서는 기성세대가 기득권을 쥐고 조금의 자리도 양보하지 않으려는 철옹성으로 느껴집니다. 반면에 기성세대는 자신들에게 악감정을 보이는 청년 세대에게 억울함을 느끼게 됩니다. 아마 각자의 입장에 따라 사람들이 느끼는 감상은 다를 겁니다. 그러나 이 작품을 쓸 당시의 안톤 체호프가 36세였다는 것을 떠올리면, 작가는 트레플례프에게 조금 더 공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안톤 체호프가 끝없는 새로운 문학적 시도를 했던 작가였기 때문일 겁니다.
평가에 대한 부담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좋든 싫든 다양한 방법으로 평가를 받으며 살아가기 마련입니다. 조직에서 일하는 사람은 조직 내에서 평가를 받고, 자영업이나 프리랜서로 일하는 사람은 고객들에게 평가를 받죠. 그리고 그 평가 결과는 실질적인 보상이나 패널티가 되기 때문에, 평가를 받는다는 것 자체만으로 큰 스트레스가 됩니다. 그 스트레스는 종류만 다를 뿐, 누구에게나 숨이 막히는 듯한 압박감을 준다는 것을 이 작품을 통해 확인하게 됩니다. 작품 속에서 유명한 작가로 나오는 트리고린 역시 독자와 관객들에게 평가받습니다. 그는 니나에게 대중이 두렵고 공포를 준다고 고백합니다. 이런 압박감은 어쩌면 안톤 체호프가 실제로 받았던 것일 수도 있습니다. 작가로서 자신의 작품에 대한 대중의 평가를 얼마나 부담스러워하는지를 느낄 수 있는 대목인 것 같습니다. 이 부분은 사회생활을 하는 대부분의 성인들이 공감할 것입니다. 트리고린뿐 아니라 신예 작가인 트레플례프, 배우 지망생 니나, 성공한 배우 이리나도 평가와 그 압박감에서 자유롭지 못한 모습입니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역시 끊임없이 평가 속에서 살아가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작품을 실제로 읽어본다면 더 깊이 공감할 수 있을 겁니다. 이 글을 통해 흥미가 생겼다면 꼭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